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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후기. 줄거리. 결말. 리뷰

by 삼조원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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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

2015년 9월 16일 개봉한 영화 사도.

1762년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 사도세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영조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장기간의 역사를 매우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들 사도세자(유아인)가 성군이 되길 바랬던 군주 영조(송강호).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왕위 계승의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기에 그 누구보다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고 싶어 했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아들에게만큼은 그런 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영조는 세자가 어린 시절부터 아주 엄하게 교육을 시켰다. 늘 권력투쟁과 죽음의 고비를 숱하게 넘겼기에 신하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항상 공부를 강조했다. 

 

자신이 즉위할 때 일부 폐단을 신하들과 약속으로 묵인했지만 세자인 아들 사도세자가 그걸 바꾸려 하자 그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툭하면 반역 모의에 죄인들은 대놓고 경종을 독살했다고, 영조의 트라우마였던 무수리 최 씨의 자식이 어떻게 왕이 되냐는 역모죄인들의 말을 듣고 자란 영조의 눈에는 세자가 늘 모자라 보인다. 자신의 혹독한 세자 시절을 그리면 아버지 입장에선 사도세자의 모습은 충족시킬 수 없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다. 세자가 어린 시절 영조가 직접 쓴 책을 한 구절밖에 빼먹지 않았음에도 강하게 훈계를 할 정도로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어느덧 세자가 청년이 되자 양위하겠다 하였지만 이는 사실 아들의 반응과 신하들의 충성심을 떠보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에 따라 대리청정이 시작되는데, 세자의 개혁적인 성향과 자신의 성향이 맞지 않고, 자신이 힘들게 이뤄놓은 탕평책을 간드리는 게 거슬려 세자의 대리청정을 못마땅해한다. 거기에 대왕대비가 죽으면서 부자의 관계는 더욱더 어긋나고 결국 영조는 자신의 눈 밖에 난  아들 세자를 폐하라는 문서를 쓰라고 세자의 스승들을 압박하고 세자가 저렇게 된 책임을 스승들에게 전가한다. 

 

그런 영조의 마음을 읽은 김상로(이대연)를 중심으로 영조를 부추기고 이를 구실로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하라며 칼자루를 던진다. 이에 이런 법도가 어딨냐며 거부하고 신하들도 몸을 던져 막지만 결국 모두 내쫓고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직접 못질까지 한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후 7일째 밤 사경을 헤매는 사도세자에게 진심 어린 속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정을 드러낸다. 세자 또한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였다는 서로의 진심을 듣고 한탄한다. 그 후 세자가 뒤주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소지섭)가 왕위에 오르며 영화는 끝난다.

 

후기

임오화변은 정말 한국 역사에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다.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던 아버지 영조. 역사가 그 시기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때이다. 노론과 소론을 시작으로 남인 북인 등 세력이 양극으로 나눠진 상황에서 영조는 탕평책을 이루려고 노력했고, 정통성을 중히 여기는 조선시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또 왕이라는 위치에서 짊어질 그 책임감을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 더 채찍질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강박적으로 공부에 전념하고 실제로 역사에서도 신하들과의 대화에서도 말문이 막히게 할 정도로 학식이 엄청나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군주로써 신하들과의 줄타기를 했으니 얼마나 안절부절못했을까. 강력한 왕권이 아니었기에 늘 가혹했다. 그런 그에게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취미생활에 빠진 아들 세자의 모습은 조바심이 들게 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게 쌓여 부자간의 사이가 틀어지고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똑똑한 세손 정조에게 삼백 년 종사의 명맥이 세손에게 달려있다 말할 정도로 세손을 아끼고 사랑했다. 아들 사도세자에게 조차 보여주지 않은 부성애 같은 모습을 세손에게는 너그럽게 보여줬다 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사도세자가 너무 불쌍하다. 영조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 사실 미치지 않고서야 온전한 정신으로 살긴 힘들다. 이래도 저래도 늘 가혹하기만 한 아버지에게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세자를 미치광이로 만든 건 영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고 안타깝다. 아버지 손에 죽은 아들.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던 아버지. 왕과 세자라는 자리로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비극적인 가족사에서 정조가 바르게 큰 것이 대단하다. 정조는 역대 왕중 가장 완벽한 왕이라 한다. 무예, 서예, 도예, 학식, 무술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한다. 실제 역사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죽게 되는 그 과정을 다 보고 자랐음에도 어긋남이 없이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래서 대단하고 슬펐다. 

 

실제 역사에서도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기 전 자살할 것을 종용했고, 세자에게 왕위를 줄 생각도 없었다. 거기에 마땅히 자신의 보위를 물려줄 마땅한 사람도 세손밖에 없었고 사도세자를 폐서인 시키면 세손에게 보위를 물려줄 수가 없어 사도세자는 반드시 세자인 상태에서 죽어야 했다. 왜냐면 사약을 주거나 참형을 하면 역적이 되기 때문에 세자뿐만 아니라 본인도 정통성에 타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자결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그가 자결했다면 세자로서 사망하고 자연스럽게 세손이 후계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인데, 사도세자가 거부하니까 저렇게 뒤주에 가둬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정말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부자간의 결말일지도 모른다. 왕의 자리란 그런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너무 재밌고 몰입감 최고였다.

 

생각할수록 슬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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